제1장

Posted by:

|

On:

|

,

수민의 일기 – 2025년 1월 7일

아 진짜… 부산까지 내려오는 길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기대는 또 괜히 했지 뭐야. 회사에서 맨날 싸우고 울고 난리 치는 사람들 사이에 치이면서 나도 정말 힘들었거든. 이번엔 제대로 숨 쉴 곳 하나 찾겠다고 내려왔는데… 재즈 콘서트 취소라니. 와, 진짜 멘붕 그 자체였어.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부산까지 내려왔나 싶더라.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 바닷바람이라도 맞으면서 좀 풀어보자 싶어서 걷기 시작했어. 찬 바람이 얼굴에 팍팍 때리는데 그게 또 묘하게 시원한 느낌이 들더라? 어쩌면 이 조용한 바다랑 하늘이 위로를 주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도 속으로는 내가 너무 즉흥적인 결정을 한 거에 화가 났지. 왜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했나 싶은 거 있잖아.

그러다 갑자기 코끝에 삼겹살 냄새가 훅 들어오는 거야. 어라, 이건 뭐지? 싶어서 냄새를 따라갔더니, 한 남자가 혼자서 삼겹살 굽고 있는 거야. 뭐랄까, 되게 익숙하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어. 내가 다가오니까 삼겹살을 뒤집더니 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웃는 거 있지.

그 순간 진짜 예상치 못했어.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 근데 뭐랄까, 그 남자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냥 앉아버렸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신기한 일이야. 보통은 낯선 사람한테 이렇게 쉽게 다가가진 않잖아?

그 사람 이름이 유진이래. 처음엔 그냥 삼겹살 냄새에 이끌려서 갔던 거였는데, 얘기 나눌수록 그의 말투나 스타일에 빠져들더라. 대학교에서 영어문학을 가르친다는데, 내가 봤던 어떤 사람보다도 되게 생각이 깊어 보였어. 뭔가 내가 평소에 생각 못 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게 느껴졌거든.

내가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 얘기했더니,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는 거야. 그날 밤은 오랜만에 누군가랑 진솔하게 대화 나눠본 거 같아.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 안정감이 느껴졌고, 내가 얘기하는 걸 진짜로 들어준다는 느낌? 그 순간, 내가 이런 대화를 얼마나 원했는지 깨달았어.

재즈 얘기하다가, 바다 얘기도 하고, 심지어 여행 얘기까지 나왔는데, 내가 전에 갔던 여행지 얘기하니까 엄청 궁금해하며 물어봐주는 거 있지. 그냥 듣고 넘기는 게 아니라, 뭔가 진짜 관심 있어 하는 게 느껴지는 거야. 대화 속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웃음이 참 따뜻하더라. 내가 별거 아닌 얘기를 해도 진심으로 웃어주는데,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어. 그런 웃음 덕분에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기분이 들더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라. 어느새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고,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졌어. 유진이랑 얘기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됐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더라.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본 밤이었어.

다시 이런 만남이 올까? 아니면 그냥 한 번의 우연이었을까? 그날의 삼겹살 냄새, 그의 웃음소리, 그리고 바다의 향기가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 남을 거 같아.

유진의 일기 – 2025년 1월 7일

아, 부산 바다. 늘 똑같이 단순하고 고요한 모습. 그래서 이번 주말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기서 쉬다 가려고 했거든. 삼겹살도 가져왔고, 바닷바람 맞으면서 먹고, 파도 소리 듣다가 뒹굴거리는 게 내 전부 계획이었지. 근데 그날 밤, 모든 게 바뀌어버렸어.

처음 그녀를 봤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어깨 축 처진 채로 느릿느릿 걷는데, 와… 딱 한 주 내내 힘들었던 사람 같더라. 그러다 갑자기 멈추고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기대감 섞인 실망이 얼굴에 보였어. 아니, 뭐 잃어버린 사람이라도 된 건가 싶더라.

그래서 내가 충동적으로 삼겹살 굽는 소리를 더 크게 내고, 물을 뿌려서 연기를 좀 더 뿜었거든. 그녀가 돌아볼 때까지 나도 약간 긴장했어. 근데 막상 그녀 눈이 딱 나를 봤을 때, 거기엔 작은 호기심이랑 약간의 놀라움 같은 게 있더라. 그리고 살짝 웃는데… 그냥 그 순간이 좋았어.

솔직히 그녀가 내 옆에 앉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돌아서 그냥 가버려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다가오더니 진짜로 앉더라고. 이름이 수민이래.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복잡한 사람 같았어. 뭐랄까, 겉으론 엄청 고급스럽고 도시적인 느낌인데, 그 안에는 묘하게 피로함이 묻어나더라.

얘기하다 보니 수민은 피부 미용 업계에서 일한대. 내가 SNS에서 본 적 있는 곳이더라. 엄청 성공한 사람처럼 보여서 약간 주눅 들기도 했어. 나는 그냥 대학교에서 영어문학 가르치면서 학교 근처 작은 원룸에서 사는 사람이잖아. 우리 삶은 너무 달라서 괜히 비교가 됐어.

근데 놀랍게도, 내 얘기에 엄청 귀 기울이는 거야. 내가 학생들 얘기할 때마다 그녀 눈이 반짝이는 게 느껴졌고, 내가 햄릿에 대해 설명하니까 고개 끄덕이며 공감도 하더라. 와, 진짜 내가 누군가랑 이렇게 제대로 통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어.

제이 개츠비 얘기 꺼내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크게 웃는 거 있지? 완전 진심에서 나오는 웃음이었어. 그냥 예의 차리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로 재밌어서 나온 거 같더라. 그 웃음이 뭔가 되게 따뜻하게 느껴졌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했어. 별도 보이고, 바다도 잔잔해지면서 뭔가 모든 게 완벽했던 밤이었어. 원래는 그냥 삼겹살 먹고 끝낼 주말이었는데, 그날 밤은 완전 다른 이야기가 됐어. 그녀와의 대화가 뭔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았어.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 사실 모르지. 하지만 못 본다 해도, 그녀랑 나눈 대화에서 엄청 많은 걸 배웠어. 사람과 연결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진짜 이런 순간이 다시 올까 싶다.

부산 바다는 여전히 파도 치겠지. 그날 밤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 조용한 바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중이야.

Leave a Reply